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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책: 걷고 걷고/일본

[일본][산책] 초여름의 이노카시라공원 初夏の井の頭公園

by 걸어도 202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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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몸치에 운동도 못하고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은 자타공인 집순이라 하지만 일 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한 외출 자제 요청에는 질려버렸다. 

수영장의 락스 냄새, 체조하고 나서 발을 처음 담글 때의 느낌, 새벽의 공항 출국 로비, 야근하고 딱 한 잔만을 외치면서 친구와 들어가던 선술집,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조금 어색하지만 이내 친숙하게 반갑하게 하는 포옹, 친구 집을 방문하기 전에 사던 꽃의 얼굴, 친구의 아기가 손 잡아줄 때 나던 냄새와 감촉들... 그런 것이 송두리 쳐 없어져버린 1 년이었다. 

민주화 탄압에 시름하는 사람들과 판데믹으로 인한 경기 악화에 직장과 집을 잃은 사람들에 비하면 배부른 투정이라며 스스로를 구슬리고 타일렀지만 어떨 때는 구슬리고 타일르는 어른인 내가 이기기도 했고 어떨 때는 철없이 나뒹굴며 울어재끼는 내가 이기기도 했다.

그날은 철없이 나뒹굴며 울어재끼는 내가 이긴 탓에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철없는 내가 원하는 걸 원하는 대로 줄 수 없다. 외로울 때마다 친구를 찾으면 친구도 지쳐버릴 것이고 좋아하는 여행은 물리적으로 불가하며 무엇보다 철없는 내가 혹여나 코로나19에 걸려버린다면 뒤치닥거리 해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에게 어쩔 수 없이 손에 쥐어지는 사탕처럼 조금 먼 곳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철없는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자존감 낮고 우울한 어른으로 돌아가 "그래 햇볕을 쐐면 우울함이 덜 해진데." 라던가 "걷는 것처럼 우울증에 좋은 운동도 없데" 와같이 SNS에서 본 토막토막 난 이야기로 그렇게 자신을 조용히 타이를 것이다.

혼자 계속 걷고 걷다가 이노카시라공원에 도착했다. 물속에는 수초가 여름밤에 피워둔 모기향처럼 피어올라 있었다. 수초의 이름은 이노카시라 후라스 코모로 차죽조과의 식물이다. 희귀한 염수 조류라 한다. 2017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방류한 동식물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한 뒤 6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식물이라는데 녹조현상의 인상이 커서 처음엔 물이 더러워서 이렇게 된 건가 같은 생각을 해버렸다. 

 

https://www.metro.tokyo.lg.jp/INET/OSHIRASE/2016/06/20q6n200.htm

 

絶滅危惧種の水草「イノカシラフラスコモ」が復活|東京都

 

www.metro.tokyo.lg.jp

 

주변 풍경을 예쁘게 비추고 있는 걸 보니 물이 더러운 건 아닌 것 같다.

그러고보니 모네가 그린 수련의 그림에 수련 사이로 구름이 비치는 수면과 이런 식물들이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에 있는 모네의 정원 예쁘다는데 언제 갈 수 있을까.... 괜찮아졌나 했더니 다시 스멀스멀 여행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몰려온다. 철없는 내가 다시 커지기 전에 뭔가 맛있는 거라도 쥐어주고 집으로 가야겠다. 산책은 오늘은 일단 이걸로 끝내자. 

코로나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고 치사율이 낮아진채로 인플루엔자나 홍역처럼 우리 옆에 그저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철없는 내가 울고 떼쓰는 날이 이대로 계속 지속될 거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버겁고 힘들어도 계속 타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이 걷고 걸어 예쁜 풍경을 보면 조금 잠잠해질 것이다. 같이 걸어 나간 곳에서 그리운 또는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리운 풍경들을 접하면 또 울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타이르고 같이 또 걸어야 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zqdXLC8F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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