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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잡기: 숨쉬고 눈뜨고

아침의 주인들

by 걸어도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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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가기 싫다.

감사하게도 재택근무가 이어지고 있어 다행이지만

그래서 사무실에 간다해도 아는 동료가 출근해 있거나

같은 회의실에서 몇 시간이나 같이 보내야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사무실은 싫다.

긴장되고 실망했던 기억들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인터넷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음료수도 마음대로 마실 수 있고

쾌적한 사무실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집주변의 B체인 커피집으로 간다.

학생 때부터 업계 최저가격의 아메리칸으로

보듬어주시고 코로나 후 인플레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저가를 자랑중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 개고 양치질하고 샤워하고 커피집에 간다.

라고 루틴을 정하니 하루종일 우울해서 누워있는 일도 줄고 좋은 것 같다.

몇 번 그렇게 반복을 하다보니 같은 시간에 이미 도착해서

자신나름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 화려한 등산복의 중년여성.

소형 노트북에 큼지막한 글씨를 띄우고 글을 쓴다.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하고 어딘가 지쳐보인다.

옆을 지날 때 힐끔보니 여행가이드북을 보고 있었다.

여행 블로그의 원고 작성해서 돈을 받는 걸까 싶었다.

두 번째 소년같은 느낌의 안경쓴 중년여성.

처음엔 대학생의 작은 체구의 소년인줄 알았는데

오늘 아침에 얼굴을 처음 보니 여성이다.

뒤에서 보면 항상 충전기를 꼽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어

학생은 열중할 것도 있고 좋겠구나 했는데 아니었다.

그 들에게 주목하게 된 건 아무래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이렇게 몇 번 씩이나

마주치게 되니 그들과 나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인식과 거기에 따른 낯설음이 있어서 인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은 낯설지만 이대로 혼자 고립되고 나아지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 둘 중 하나가 나의 미래의 모습이 될 것 같은 위기감이 있는게 제일 크겠지.

생각을 쓰고 나니 굉장히 실례가 되는 말로 그 둘이 얼마나 재능과 재력이 있을 줄 알고

마음대로 관찰하고 잣대를 들이대는게 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매일 아침 커피집 개점에 맞춰 음료수를 시키고

자신의 세계에 몰두 했는 그들과 나는 아침의 주인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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